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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모교육

왜 내 아이만 예민해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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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얼 전트 알라입니다. 7세인 제 아이를 키우면서 참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키웠어요.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엔 아이가 예민한 게 아닌 엄마인 제가 예민했더 거였어요. 아이는 점점 커가는데 아이의 예전 모습의 이미지를 씌워 계속 생각하고 있더군요. 저는 왜 제 아이가 예민하다고 느꼈을까요?

 

 

1. 생후 6개월부터 바닥이나 벽에 머리 박기 

6개월생인 이 꼬맹이가 뭘 안다고 머리를 박았을까요? 정말이지 이 문제가 제가 육아하면서 최강으로 힘들었던 부분입니다. 다시는 이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요. 36개월까지 박았기 때문에 상상이 가시나요? 초반에는 졸릴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나다가  어떤 상황이 맘에 안 든다거나 화가 나도 벽에 가서 일부러 머리를 박더라고요. 어디 이상이 있나? 의심의 의심의 꼬리를 물고 병원을 가도 납득이 갈만한 피드백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러던 하루 저희 큰언니의 말이 ' 쟨 말 엄청 많을 거야 답답해서 저러는 거지 문제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그냥 언니로서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뭐죠? 36개월까지도 간간히 머리 박던 버릇이 언어가 완벽히 된 후로는 감쪽같이 사라진 머리박기 버릇.......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제 블로그를 보면서 머리박아서 고민이신 부모님이 계신다면 말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려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네요.

예민했다고 생각해던 아이는 이런 성장을..

2. 유모차를 왜 안타니?

유모차를 왜 안 타니? 왜 안 타지? 참 이런 생각 많이 했습니다. 제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죠? 유모차에서 눕히기만 하면 발악을 하는 바람에 유모차보다는 아기띠, 힙시트를 달고 살았어요. 가장 부러웠던 엄마는 카페에서 엄마는 엄마 자유시간 갖고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진심 너무 부러웠어요. 왜 난 저걸 못해보는가... 가끔 친구라도 놀러 오면 카페에서 2시간 수다를 떨어도 친구는 아들을 아기띠로 재우고 유모차에 눕히고  소파에 앉아 있고 전 아기띠를 하며 2시간을 그대로 서서 흔들흔들 거리며 아이 낮잠을 재웠어요. 그냥 이게 당연한 일상이었어요. 

 

잠으로 따지면 유모차뿐만이 아니라 4살까지 밤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였죠? 밤잠을 자다가 발악하는 일이 정말 무수히 많았어요. 발악 아시죠? 그냥 우는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발악이었죠. 커서 말이 될 때는 이유가 많더군요. 다리가 불편하다는 거랑 발에 땀이 차서 찝찝하다며 자꾸 깨더라고요. 말이 될 때는 그나마 낫지만 말이 안 될 때는 정말 같이 껴안고 운 적도 많아요. 

 

그래도 이 부분에서 제가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했던 것은 비교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진심으로 빡치는 날이 많았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너는 왜 안타! 남들 다 타는 유모차를!!' 이런 말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나의 어떤 말이든 말을 못 하는 아이가 다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눈빛으로요~

 

3. 분유, 이유식은 왜 안 먹니?

3.4kg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키워본 결과 제 배속에 있었을 때가 가장 무럭무럭 자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리원을 나와 집에서부터 분유를 시작으로 정말~~~~~ 안 먹었어요. 병원을 가니 의사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 어머니 일부러 먹이려고 힘 빼지 마세요. 이런 성격은 타고났어요. 근근이 살아갈 거예요. 생명에는 지장 없게요"

 

이 말은 듣는데 참 답답하더라고요. 100일이 되면 생후 체중에서 두배가 돼야 정상으로 봅니다. 하나 제 아이는 돌잔치하는 날 딱 7.0kg였어요. 얼마나 작고 말랐는지 지금도 사진 보면 짠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유아 검진을 하면 늘 2퍼센트 위아래로 나오니 대학병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메세가 늘 있었죠. 그래도 아이를 믿고 제가 잘 키워보겠다고 대학병원까지는 안 갔어요. 이유식을 만들어도 안 먹기 일쑤였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아이를 먹이려고 주는 게 아니라 벽한테 준다고 생각하고 이유식을 만들었어요. 그래야 제 맘이 편했거든요. 오늘은 그래도 먹겠지라는 그런 기대가 절 더 지쳐가게 만들더라고요. 

 

그러다 3살에 어린이집에서는 반전이 드러났습니다. 제 아이가 원에서 밥을 잘 먹는다는 거죠? 이런 아이가 있다고는 하던데 그게 제 아이일 줄은... 전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 더 놀랬냐면 제가 음식 하는 걸 좋아해서 아이 음식을 만들고 나면 꼭 사진을 찍어서 지인들께 보내 주거나 아이 친구들 초대해서 밥해주면 제 아이만 빼고 다 잘 먹더라고요. 

 

장이 약했던 제 아이에게 3살부터 여름만 되면 식혜를 직접 만들어서 주고 그러면서 키웠거든요. 지인들이 요리 블로그 해보라는 권유도 받을 정도였지만 정작,, 제 아이는 관심 밖이었어요. 참으로 씁쓸했던 시기였어요. 그랬던 제 아이는 지금도 잘 먹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가 만든 엄마표 보쌈, 고등어구이, 감자전을 가장 사랑하는 메뉴로 있다는 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4. 왜 응가를 참니?

제 아이는 3살부터 변비였어요. 알고 보니 똥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참았다는 사실을 3년 후인 6세에 알게 되었죠. 그동안 99퍼센트는 배가 아파서 포리부틴 약을 달고 살았기에 늘 그랬듯 장이 약한 탓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원인은 장이 아니라 제 아이가 본인 스스로 참았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1년간 소아과 약을 먹었지만 오히려 더 악화가 되었고 한약을 잘 먹고 잘 받는 아이라서 한약을 먹였더니 서서히 응가 참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완전히 고쳐졌어요. 정말 너무 행복했죠... 

 

반전은 요즘 다시 또 참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마일스라는 영어만화에 푹 빠져서 이거 보면서는 자꾸 참더라고요. 어찌 됐건 참는다는 건 심리적 요인이 강한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오늘도 아이에게 '엄마는 우리 아이를 믿는다 이걸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본인이야~ 파이팅이야"라고 하고 전 또 케일 사과주스를 갈고 있네요^^ 

 

 

5. 대학병원 VIP실까지 입원해본 우리 아이 

워낙 태어났을 때부터 장이 약했던 아이여서 입원을 여러 번 했어요. 분수토와 설사를 반복하다 보니 탈수는 기본이었기에 바로 응급실을 가는 날이 많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100일쯤 운전연수를 받아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탈수가 오면 소변 색깔이 살구빛이더군요. 이 소변 색깔이 보이면 바로 링거 꽂아야 해서 많이 다녔어요.

 

얼마나 토를 많이 했으면 아이에게 위액이 나오고 탈수였기에 응급실에서 소변검사가 그렇게 어려웠어요. 기저귀를 하고 있는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소변 담는 봉투를 붙여놓아도 8시간 동안 소변을 안 하기도 했어요. 수액을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러다 입원실이 꽉 차고 VIP실만 남은 상태였을 때 바로 입원을 시킬 정도로 아이에게 안정이 필요했어요.

 

걷지도 못하는 아이였기에 입원하면 종일 힙시트 위에서 아이를 키웠거든요. 참 엄마 되는 일이 이리 어려운 일이었나 싶었어요. 어떤 때는 퇴원했는데 하루 만에 다시 재입원한 적도 있었답니다. 이때까지 제가 주거형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는데 이 집이 환기가 잘 안 되는 구조였고 창문도 너무 작았어요. 혹시 이 집이 환기가 안돼서 내 아이가 장염에 자주 잘 걸리나?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집에 관심도 많이 생기게 되고  결혼 7년 만에 이사도 3번이나 했답니다. 

 

6. 나의 결론

위의 내용 이외에도 예민해서 생기는 일들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제 아이는 예민이 아닌 섬세한 아이였고 제가 포용력이 부족했던 사람이었더군요. 섬세했기에 반대로 너무 장점인 게 많았어요. 웃기지만 하도 병원을 자주 다녀서 그런지 지금은 치과에서도, 입술이 찢어져서 국소 마취하고 시술해야 하는 상황에도 끄덕 없이 할 수 있다며 하고 나오는 제 아이입니다. 지금도 열이 나면 해열 링거도 참 잘 맞죠. 

 

또 섬세했던 덕에 배변도 18개월쯤 시작해서 24개월부터는 팬티를 입었어요. 신체적인 변화에 섬세했던 아이였더라구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감사합니다. 본인이 변화를 느끼기에 아플 때나 해결을 좀 더 빨리 할 수 있거든요. 

 

조금 더 제가 포용력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후회도 하고 예민하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예전 모습에 반성하는 바입니다. 결국엔 웃고 가도 될 일을 늘 사건 파헤치듯이 해결하려고 했거든요. 요즘의 최대 고민은 아이가 응가를 다시 참기 시작했다는 거지만 전 아이를 믿어요. 꼭 해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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