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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모교육

엄마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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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7세 외동아들을 엄마표로 키우고 있는 얼 전트 알라입니다. 아들 교육시키면서, 곧 입학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아들이 준비할 것만 생각이 나시나요? 전 제 학창 시절이 많이 떠오릅니다. 지금 제 아들처럼 성실하지 않았던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식 교육하기에 앞서 어떤 학생이었나요?

소리내어 사설 읽기

1. 말더듬었던 초등학생 

발표하다가 도망간 9세의 나

말 더듬어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기억으로는 7세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였나면 특정 단어가 첫 글자가 말이 안 나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여보세요'에서 '여'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전형 상상이 안되실 겁니다. 공포스러웠지만 엄마는 절 혼냈습니다. 왜 혼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엄마는 당시에 유명한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이 말 더듬는 역할이었는데 그 배우를 제가 따라 했다고 생각하고 늘 혼냈습니다. 따라 할 것을 따라 하라고 말입니다. 따라 했던 자연스레 그랬던 결론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말을 더듬고 이때까지도 전화벨이 울리면 '여보세요'에서 '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선생님이 저에게 국어책을 읽어보라고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없고 남들 앞에서 말해본 적도 없었던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엄마한테 많이 혼나고 제 스스로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더 공포스러웠습니다. 일어서서 책을 펼치고 있고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분위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시간이 흘러도 제가 책을 읽지 않자 분위기는 이상했고 전 책을 책상에 던지고 교실 밖을 빠져나왔습니다. 화장실로 숨었습니다. 그 이후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분명한 건 이 사건을 엄마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제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언니들한테도 비밀로 했습니다. 언니들한테 말하면 그대로 엄마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도 터득하게 된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속으로 박자를 세는 겁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속으로 하나, 둘, 셋이라고 하고 바로 '여'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집에서도 아르바이틀 하면서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그나마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참 신기합니다. 저도 이유는 모르지만 나름 아르바이트를 해본 저는 모두 다 고객에게 말을 해야 하는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수능이 끝나고 목동 로데오거리에 옷 매장에서 일해보았고, 고1 때는 롯데리아에서 대학생 때는 토니로마스라는 레스토랑, 세븐스프링스에서 아르바이틀 하였습니다. 고객에게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제가 왜 이런 일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저도 모르겠지만 정말 신나게 일했습니다. 

 

2. 말더듬던 학생이 마이크를 잡습니다.

cs강사를 하다 

서비스업에서만 대학생 때 아르바이틀 하고 있는데 당시에 전 세븐스프링스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역삼점에서 근무하다가 홍대 오픈 매장으로 가서 일을 하고 다시 역삼점으로 왔습니다. 아르바이트 신분이었던 저는 한번 전국에서 1등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 때는 단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었던 학생이었습니다. 그 흔한 줄반장도 해본 적이 없었고 오로지 서기만 6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랬던 제가 1등 한 이유는 바로 코로나라는 병맥주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욕심은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영역에서는 다 이기고 싶은 승부욕이 있었습니다. 학생 때는 그게 학교 공부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세븐스프링스가 대한민국에서 몇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몇 개월에 걸쳐 진행이 된 코로나 맥주를 가장 많이 판매한 직원에게 삼성서비스 아카데미 수업을 듣게 해주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이 수업비가 몇백만 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결국 아르바이트 신분으로 1등을 해서 전 2주일 정도 숙박을 하며 이 수업을 듣게 되면서 CS수료증을 받았습니다. 

 

CS에 관심은 강사로 이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졸업반이었을때 세븐스프링스를 그만두고 MBC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예라고 서비스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그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았던 돈 중 남은 300만 원 정도를 투자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말도 더듬었고 발표도 못했던 저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모양입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4개월을 거쳐서 수업을 듣고 결국 2등으로 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1등으로 수료를 하면 예라고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아쉽게 2등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1등이었던 친구는 전주에 사는 친구여서 여의도까지 출퇴근으로 인턴을 할 수가 없게 되자 그 기회가 저에게 온 것입니다. 당시 저는 화곡동에 살고 이었기에 5호선으로 한 번에 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 CS강사를 하면서 연구원 자격으로 예라고 아카데미에 소속이 되어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건 예라고 아카데미 대표님은 지금의 허은아 의원님이십니다. 더 신기한 것은 제가 홍대 스프링스에서 일할 당시에 눈 다래끼가 너무 자주 가서 자주 가는 안과가 있었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이 바로 허은아 대표님의 신랑님이셨습니다. 참 우연히 이렇게 기가 막히다니요. 회사가 이색적이어서 9시 뉴스에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3. 25세에 대학 편입을 하루만에 결정하다.

영어 강사 유수연님의 그 책 문구가 제 인생을 바꾸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기회가 좋아 예라고 아카데미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회사에서 강의도 하고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연재해야 하는 서비스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 쓰는 것이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느꼈습니다. 사실 MBC 아카데미 다니면서도 느꼈습니다. 책을 많이 안 읽는 티가 팍팍 났습니다. MBC 다니면서는 숙제가 늘 강의하는 것이었기에 4개월 동안 교보문고에서 반나절은 있을 정도로 책 보고 강의 자료 교안작성을 하고 신문 사설을 소리 내서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연구원으로 일하다 보니 이런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 수준에 너무 버거운 어느 날 여이도로 출근하고 있는데 5호선 지하철에 유수연 강사님의 책을 광고 중이었는데 그 광고의 문구는 바로 ' 5년 뒤에 당신이 지금과 똑같다면?'이라는 문구가 제게는 확 끌어당겼습니다. 언제나 결정이 빠르고 실천력이 최강인 저는 하루 고민하고 엄마에게 편입 공부하겠다고 다시 대학을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공부하면서 뭔가를 더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멈춤없이 진행하다 보면 그 흔한 일반강사에서 머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뭔가 더 잘하고 싶었나 봅니다. 준비해보시는 분은 알겠지만 편입영어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대학 GRE 시험 수준의 지문과 어휘가 나옵니다. 수능처럼 1년에 1회 시험이고 뽑는 인원도 휴학을 했거나 군대를 갔거나 그 자리를 충원하기에 뽑는 거라 이미 어렵다는 정평이 나있는 시험입니다. 전 국어공부가 더 필요했다고 느꼈지에 국어국문과에 지원하려는 목적이었고 국문학과는 많이 뽑아야 평균 3~4명이었습니다. 남녀공학은 군대 때문 에라도 더 많이 뽑지만 특히 여대는 많아야 2명 정도입니다.

 

1년간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다가 결국 떨어지고 다시 1년을 준비하는데 그때는 얼마나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지 핸드폰을 버렸습니다.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고 편입영어에만 매진하고 학원 다니지 않고 인강을 들으며 1년을 독서실과 집만 다녔습니다. 참 독합니다. 학생 때는 이런 모습이 없었기에 언니들과 엄마의 신뢰가 없었는데 이때의 1년이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가족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결국 전 1명 뽑는 국문과 여대로 편입을 성공했습니. 여기서 또 다른 신기할 일이 나옵니다. 다시 3학년으로 입학을 했을 때 제 나이가 27살이었습니다. 교양수업에서 CS수업이 있어서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MBC아카데미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을 때 제가 가장 좋아했던 파트너강사 손승온 강사님이 겸임교수로 이 학교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 둘 다 너무 신기해서 한참 웃고 서로 껴안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 그만둔다고 했을 때 연구원에서 선물을 주는 건 유일하게 제가 처음이라고 말해주셨던 사람이었습니다. 

 

참 독하게  미친 듯이 공부하고 저 혼자 계획하고 제 자신만을 절제하고 믿고 간 그 1년이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 편입영어 공부하면서 오히려 영어에 매력에 빠져 어학 년수도 다녀오고 결국 영어강사로도 활동하고 결혼하게 된 저입니다. 전 압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조언하고 떠먹여 줘도 본인이 의지가 없으면 결과는 없다는 것을요. 따라서 7살 외동아들에게도 본인이 주도하고 본인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게 교육하고 있고 이것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즉, 생각할 줄 아는 학생이 될 수 있도록 전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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