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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모교육

7세 외동아들과 재테크하는 우리 부부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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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격 급한 얼 전트 알라입니다. 외동아들 키우며 재테크하시는 30대 부부 있으시죠? 첫 집을 계약하고도 2번을 이사 간 저희는 아직도 공부 중입니다. 외동아들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외동이기에 제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미래 부부의 자기 계발과 재테크 공부에 힘쓰고 있습니다. 

 

1. 1년 6개월동안 살았던 우리 부부의 첫 집, 아직도 그 집을 기억하는 외동아들

동대표를 해본 우리 신랑! 화장실 수전설치에 힘을 쓰다 

거의 2년이 지나고 우리 부부는 주거형 오피스텔에서 탈출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 아이가 당시 15개월이었습니다. 이삿짐 센터가 올 때 더운 여름이었는데 아기띠를 메고 오피스텔 밖에서 우리의 짐이 싣고 있는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사 가기 전 새 아파트는 사전점검이라는 것이 있다는 거도 처음 알았습니다.

 

비닐로 쌓여진 신발 덮개라고 해야 하나요? 701호였던 저희 집을 저희 부부는 샅샅이 다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는 돌이 막 지난 상태여서 친정에 맡기고 부부만 갔습니다.  처음 저희 집을 보는 순간, 이 집이 우리 것이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 진짜 이집이 우리 집이라고? 진짜로?"

 

사전점검을 제대로 마치고 이사를 하고 나서 입주민의 추천으로 생애 최초 동대표를 해본 저희 신랑은 하나의 업적을 거두고 동대표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업적은 화장실 수전 설치를 요청했고 그것이 모든 집에 다 설치가 되었죠. 이거 덕분에 화장실 청소 한번 제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2. 8단지에서 2단지로 이사가야하는 이유

단지 내로 초등학교 입학을 시키려면?

미분양이었던 8단지로 간 저희는 막상 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으니 초등학교였습니다. 의심 없이 당연히 아파트 단지 내의 학교로 입학할 줄 알았는데 그건 저희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당시 아파트는 7천세대가 넘는 미니 신도시급의 아파트 였습니다. 알고보니 8단지는 아파트 내의 초등학교로 배정이 안되고 8차선을 건너서 있는 초등학교로 배정이 된다는 겁니다. 

 

너무 싫었습니다. 비록 아이가 3살이었지만 제 목표는 초등학교가 단지 내 있는 거였고 그래서 여기로 이사를 온 것인데 8차선을 건너서 다녀야 한다는 말에 여기 아니다 싶었습니다. 1년 6개월을 살때 쯤 단지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2단지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2단지에서 살면 단지내 초등학교로 배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격 급한 전 또 목표를 설정하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죠. 신랑도 동의하였습니다. 3억 5천에 샀던 집을 4억으로 난 팔아보겠다고 나름 포부를 가지고 덤볐습니다. 당시에는 4억으로 판 집이 없었거든요. 

 

" 자기야 나는 꼭 4억으로 팔 거야! 꼭 앞자리 4를 찍고 여기 단지를 뜰 거야!" 

 

결론적으론 전 4억 5천에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고 5천을 깎아주고 4억에 매도했습니다. 여기서 깨달은 사실 한 가지! 

 

" 부동산을 팔 때는 얼마 받고 팔지라는 생각보다 내가 팔려는 집과 사려는 집의 갭이 중요한 거야"

(제가 무조건 이 집 4억에 팔 거라고 했거든요)

이 말은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하신 말입니다. 

 

30개의 집을 구경하고 2단지의 한 7층 아파트에 또 계약을 합니다. 성격이 급하고 부동산이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신랑은 전적으로 저의 통찰력을 신뢰했습니다. 결국 제 신랑은 집도 보지 못한 채 전 계약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외동아들을 데리고 30군데를 보러 다녔던 그 시절이 또 떠오르네요. 

 

이렇게 이사 간 2단지 집에서 저희는 6개월만 살고 광교로 다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부동산 재테크를 하면서 더 무모한 일이 펼쳐집니다. 

 

3. 광교로 가자!

거실에 붙였던 광교신도시 지도! 마술이 부려지다.

2단지에서 6개월만 살고 저희는 또 집을 팔고 광교로 이사 왔습니다. 그 배경에는 또 무모한 제 성격과 통찰력에 있습니다. 미니 신도시급이었던 저희 아파트의 이슈는 군 공항 이전이었습니다. 군공 한 이전이 된다 안된다는 의견에서 전 된다에 찬성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찾아다니며 정보수집을 했습니다. 

 

그러다 '아! 내가 순진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군 공항 이전하는 담당인 수원시 담당자를 만나게 됐는데 겉으로 보기에만 이전의 움직임이 있을 뿐 내부에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전 신랑에게 여기를 뜨자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중학교는 여기에서 보내 생각이 없었습니다. 중학교는 광교로 입학시킨다는 저의 목표가 있었지만 그 목표를 향한 저의 행동이 지금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르게 되었습니다.

 

재테크의 진심인 제 신랑을 설득하려면 보고서가 필요했습니다. 말로만 하는 설득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이사온지 6개월밖에 안됐기에 아무리 재테크하는 신랑이라도 거절할 것 같았습니다. 전 워드로 작성해서 우리가 지금 당장 여기를 떠야 하는 이유와 광교로 지금 움직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낱낱이 적었습니다. 

 

역시 제 신랑!

" 그래 광교로 가자" 우리는 합의를 하고 제가 미리 봐 둔 아파트를 가서 봤습니다. 

단 여기서 조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34평에 살았던 우리는 광교로 이사 가려면 24평으로 평수를 줄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린 24평으로 이사를 오고 6개월만 살았던 그 집을 팔았습니다. 

 

결국 거실에 붙여둔 광교신도시 중 살 수 있는 수준의 아파트는 한 곳 뿐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터를 잡고 제가 사랑하는 외동아들과 신랑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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